프로롤그
작은 상자 바깥에 더 큰 상자가 있다.
나는 버몬트의 숲, 자연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계절의 냄새도 알고, 계절에 따라 비 내릴 때 여향이 다른 것도 알고, 좋은 흙과 안 좋은 흙의 차이를 냄새로 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 “겨울 냄새 난다” 그러면 친구들은 “무슨 소리야?”라고 묻는다. 겨울의 냄새, 계절의 냄새가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픈 것 같다.
자연의 냄새와 도시의 냄새는 다르다. 비가 내린 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차갑고 비어 있다. 자연의 냄새를 모르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인간이 뭔지 모르고 살다 간 사람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숲, 자연이 나의 기본설정을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 나가서 직접 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줬고, 사람과 사회, 인류보다도 큰 기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우리가 자연 안에 있고 그 일부이며, 자연이 우리를 구현시킨 것인데도 우린 그것을 잊고 살고 있다. 버몬트는 자연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 같은 존재이다.
우리가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밀폐된 것인 양, 자연과 환경에는 연결고리가 없는 양 생각하게 된다. 인공적으로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정원도 가꾸고 공원도 조정하며 우리 주변을 꾸미지만, 자연에 관한 생각은 거기에 그치는 것이다. 마치 신기한 것들로 꾸며진 빅박스스토어(Big-box store, 여러 지점이 있는 가게로서, 건물을 크고 네모난 모양으로 지은 대형마트나 쇼핑몰을 말한다)에 갇혀 일평생을 사는 것처럼.
나, 우리 집, 직장, 사회라는 상자는 자연이라는 더 큰 상자 속에 있다. 큰 상자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그 안에 속한 작은 상자가 위험해지는 것은 너무 명백하다. 우리가 속한 더 큰 상자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순간, 작은 상자 속 우리는 모두 위험에 빠진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큰 상자를 잊어가고 있다. 우리가 갇힌 인공이라는 작은 상자 바깥을 전혀 상상하려 하지도 않는다. 수도를 열면 물이 쏟아지지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다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공기가 숲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하는데, 사실 가장 많은 산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바다이다. 바다에서 작은 플랑크톤이 번식하며 산소를 배출하는데, 그게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걸 알고 있으면 바다가 더러워져도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은 할 수 없다.
이 책에 그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자연, 환경 이야기를 담았다. 내 꿈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지금 우리 삶, 우리 재산, 우리 미래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동안 TV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얘기하려고 해도 결국 재미없다는 이유로 편접되거나 빨리 감기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환경을 이야기 하는 건, 누구라도 당장 말을 꺼내고 너나없이 당장 행동해야 할 만큼 지구의 상황이 절박해서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마음으로 작은 용기를 낸다.
PP.6-9
분리수거, 분리배출, 전기를 아껴 쓰는 것, 기본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어떤 시스템 속에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그 시스템이 지속가능한 구조인가를 따져야 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러니 “나는 분리수거도 잘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잘 분리배출하니까 괜찮아.” :그래도 한국이 가장 큰 환경범은 아니잖아?” 식으로 핑계를 대고 싶어 한다.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너는 뭘 한다고.”식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실제 나도 그런 공격을 받는다. 2018년 4월 나는 트위터에 “화력 발전소 좀 그만 짓고 그만 돌리고 걱정 없이 숨 쉴 수 있는 한국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쓴 적이 있다. 바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 댓글이 달렸다.
상당히 차별적인 반응이었지만, 거기에 관해서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비자를 받고, 세금도 내고, 한국인도 채용해서 함께 일하고 있다. 싫은 소리를 했다고 돌아가라는 사람은 여권이 다르니 네 의견은 없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럼 내 국적이 한국이었다면 나를 욕하지 않았을까. 어째던 본질적인 문제나 메세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데 더 관심을 쏟을까.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신경을 쏟고 싶지 않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데, 고작 목소리 내길 주저하겠는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못 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절박하고 너무 막막하니까 조금이라도 앞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도 출판사 상대로 “그러니까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하라.” 이렇게 강요하고 돌아다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찍어주는 곳은 없다. 조금이라도 거기에 가까워진 것이라면 생각해보는 것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한 것도 필요 없다. 다만 깨어 있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게 중요하다.
pp.77-78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절차를 밟고 있다. 나는 대통령이 직접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을 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 관한 한 국가를 너무 믿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정치적인 주체이다. 개별 국가의 이익을 추구한다. 물론 국제적으로 손을 잡고 같이 협력해나가자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내 손이 불편해지는 순간 미련 없이 그 손을 놓는다.
P.96
한국에 와서도 채식을 시도했지만, 한국에서의 도전은 더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왜인지 고기를 먹지 않는 데에 죄책감이 들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걸 왜?’하며 이상하게 보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여기는 시선이 많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약 때문에 안 먹는다고 하면 쉽게 받아들이는데 “내 가치관 때문에 고기를 안 먹는다”라고 말하면 상당히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몸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건 괜찮지만, 가치관 때문이라면 사회적, 문화적으로 피해를 주는 행위로 여기는 것 같다. 선택이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못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p.117
선생님은 닭을 직접 잡았다. 닭이 움직이지 못하게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뚫어놓고 닭에게 씌워 그 상태로 목을 잘랐다. 학생 중에는 그런 도살에 반감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끔찍해서 그 장면을 지켜볼 수 없었다.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직접 잡지도 못하면서 무슨 고기를 먹겠다는 거냐?”라며 당당히 말씀하셨다. 듣고 보니 비겁한 건 오히려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식시간에 즐겁게 고기를 먹는 사람이 막상 그 고기를 만드는 순간에 불평한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맛있게 고기를 먹을 거면서. 사실을 부정하고 혜택을 누리면서 책임을 지기 싫은 비겁한 마음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몰라서 편한 게 있지만 사실은 몰라서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작가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라는 책이 있다. 동물과 식물, 먹는 모든 것을 직접 길러 식탁에 올리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다. 우리는 동물을 식당의 요리나 마트의 상품으로 접한다. 동물이 자라온 많은 시간과 동물이 자라는 동안 들인 자원, 자라는 과정, 그 모든 가치와는 유리된 채로. 직접 동물을 키우고 죽이는 것보다 상품으로 접한 동물을 아무 감정 없이 먹는 게 오히려 잔인하지 않나 싶다.
PP.176-178
정책적으로 빅박스스토어가 들어오지 못하는 규제도 있다. 버몬트의 주도(주의 대표 도시)는 몬트필리어 Montpelier인데, 미국의 주도 가운데 유일하게 맥도날드가 없는 도시로 유명하다.
월마트, 케이마트 시어즈 등 대형마트를 보통 빅박스스토어big box store라고 한다. 어디서든 똑같은 사업 모델을 적용하고,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건물을 네모난 모양으로 지어 꼭 커다란 박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맘앤팝스토어mom-and-pop store라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의미이다. 대기업의 빅박스스토어가 들어오면 소규모 가게들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버몬트의 많은 지역은 형태와 면적, 시스템을 규제해 대형마트의 진출을 통제한다.
또 미국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옥외 광고판도 버몬트주에서는 자연 경관을 해친다고 판단해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버몬트는 숲이 둘러싸인 푸르른 곳이면서, 건물이 낮고 고풍스러운 곳이다. 그곳에서는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버몬트 학교에서는 자연과 연계된 교육을 받았다. 민들레, 모나크나비, 사마귀 등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는 등 자연과 생태를 배웠고 과학, 역사, 문학, 미술 등 거의 모든 과목을 자연 속에서 진행했다.
리트머스 종이로 화단의 흙과 숲의 흙, 흐르는 시내의 상류와 하류를 다니며 pH를 비교 측정하는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게 땅의 pH는 그 땅에 자라는 식물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략)…
역사 시간에 원주민 사냥법을 배우기도 했다.
…(중략)…
역사와 문학, 생태학과 화학, 생물학과 진화… . 한 분야와 다른 분야, 지식과 현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지식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않았다. 단순한 평가를 위해 화학 주기율표를 통째로 외워서 시험을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버몬트에서 지식은 우리 자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ppp.170-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