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위기 지구를 위협하는 전쟁과 테러, 인종• 종교• 성 정체성의 갈등 미래 문명을 건설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세계시민은 어떤 가치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본 교재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전개되고 있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변화와 그것의 기회와 위협의 측면을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포착하고 조망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세계시민이 근현대 문명만이 아니라 미 래 문명의 주체여야 한다는 인식과 진단에 기초했다.
1장에서는 시민과 세계시민이 누구인지 혹은 누구를 시민과 세계시민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즉 시민과 세계시민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등장했으며, 어떤 가치와 규범과 자격-시민권(시티즌}-을 추구하고 갖춰왔는지에 대해 검토한다.
2장에서는 세계시민의 정치적 존재 기반인 민주주의의 특성과 그것이 약화된 양상과 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 등과 같은 제도적 형식으로 국한될 수 없으며, 강자와 약자 간 의 힘의 균형과 그것을 위한 시민의 실질적 주권 행사에 기초한다는 것을 파악한다.
3장에서는 세계시민의 경제적 존재 기반인 자본주의의 특성과 그것이 불평등을 낳은 요인이 무엇인지를 시장과 정부, 자본과 노동의 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 이때 시장에 대한 정부 관여의 배제를 특 징으로 삼고, 자본 이동의 자유를 극대화한 신자유주의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는지를 검토한다.
4장에서는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국적 차원이 아닌 지구적 차원의 문제임을 확인한 다. 그리고 이주와 난민, 인종과 종교와 성 정체성 갈등, 지구온난화와 4차 산업혁명 등과 같은 문제들의 양상과 영향과 요인을 파악한다. 그리고 세계시민적 가치에 바탕해 그 해결 방향이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감사의 글
서문
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 / 도정일
제1장 시민, 시민권, 세계시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차적으로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 또는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직접 후보로 출마하는 것으로 우리는 시민성을 경험한다. 4년 또는 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각종 선거에 참여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일이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오늘 주권자로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간주된다. 선거 때마다 어깨에 띠를 두른 선거운동원들의 인사를 받고 기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마치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그런데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관례적인 의식(儀式)을 위해 지난 수백,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그토록 많은 피와 땀을 흘렸다는 것이 과연 믿어지는가?
우리 사회에서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거의 한 달 동안 수백만 명의 군중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과연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또 이로부터 더 나아가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래 세 편의 글은 바로 이 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수록되었다. 먼저 교재편집팀이 집필한 「역사적 존재로서 시민과 세계시민」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중세 유럽을 거쳐 시민이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 그리고 현대의 시민이 제기한 기본적 권리와 그것이 오늘의 세계화 속에서 확장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 글은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지침서다.
시민혁명 후 현대사회는 민족국가의 제도적 틀 속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는 낡은 중세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곧 그 한계를 드러냈다. 개인의 기본권은 정의상 보편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반면, 민족국가는 일정한 경계에 의해 구획되기 때문이다. 내국인의 권리가 이방인에게는 부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편적 기본권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도 인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족국가의 주권을 일정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협약을 통해 설립된 국제기구들은 회원국들에게 공통의 규칙을 제정한다. 이를 통해 기본권이 서서히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된다.
초기에는 정부 간 협약을 통해 설립된 국제기구가 세계화를 주도했지만, 점차 민간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와 국제회의가 그에 못지않게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정부기구에 비해 실질적인 힘은 약하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지적 권위를 획득하고 있고, 정부기구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세계화가 비대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활발하게 전개되는 반면, 노동의 세계화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개인의 기본권 중에서 재산권은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되지만, 노동권은 여전히 민족국가의 틀에 머무르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는 점점 더 경제적,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시민의 이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족적 시민에서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기존의 시민성을 단순히 외연적으로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민혁명에서 제기되었지만 그동안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던 권리들을 재차 강조해야 된다. 그럼으로써 민족적 시민의 제한적인 보편성을 극복할 수 있다. 즉 세계시민은 민족적 시민성의 질적 변형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그러한 권리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권이다. 조앤 스콧의 「시민성, 개인성, 성적 차이」는 민족적 시민성이 가정하는 남성 편향적 개인성을 비판한다. 아울러 시민성에 성적 차이를 기입하는 것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준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헬드의 「세계시민 민주주의」는 공식적인 정치적 권위의 범위와 국제 정치·경제적 현안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면서 세계시민성이
유토피아적 이상이 아니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글로벌 차원의 정치적, 행정적 역량을 창출하기 위해 요구되는 제도적 요소들을
몇 가지 지적한다. 세계시민성은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향을 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변형하여 더욱 가속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까? 오늘의 세계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이 방향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이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장에 수록된 글들은 다소 부족하지만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이론적 시각을 제시할 것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시민과 세계시민 / 교재편집팀
시민권, 개인성, 성적 차이 / 조앤 W. 스콧
세계시민 민주주의 / 데이비드 헬드
보론 시민권과 사회계급 / 토마스 H. 마셜
제2장 세계시민의 존재 기반과 그 위험:정치 영역
시민은 정치적 주체이다. 인간적 삶과 행복을 위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주권자로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작금의 시민은 정보화와 세계화를 겪으며 공간과 지리적 경계가 지구전체로 확장된 현실에 놓여 있다. 이 현실에서는 시민과 국가와 기업 등이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이는 어느 한곳의 문제가 결코 그곳만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계와 시민’ 교과와 교재가 시민을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이유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끼치고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시민은 실제 주권자로 살고 있는가? 그러지 못하다면 그 양상과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주권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즉 주권자로 살아가기 위한 관점과 경로와 방식은 무엇인가?
2장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과 현실에 대해 살펴본다. ‘정치적 주체-주권자로서의 시민’에 관한 생각과 행동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또 지구적 차원에서의 상호 연결과 영향과 의존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구적 차원에서의 협력과 연대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공존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세계시민은 바로 그러한 민주주의를 지구적 차원에서 지향하고 구현하는 주체이다.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를 독재정치의 방지뿐만이 아니라, 자기결정과 자기실현을 위한 자유와 평등과 평화라는 가치의 실현 등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간적 삶을 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있는 게 아니라,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라 했다. 최장집과 박상훈이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 현실에 주목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경제적 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당대의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를 인간적 삶의 기반으로 세워내지 못하고, 권력의 차지 혹은 자신만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정쟁의 이념 혹은 논쟁의 이론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런 중에 민주주의는 인간의 삶과 괴리된 추상적 가치나 이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인 정부와 의회와 정당에 대해 불신이 크게 증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어떤 나라인지를 막론하고 부와 권력이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고, 주권 행사를 위한 정치 참여의 기회조차 재산과 소득수준 등에 따라 격차를 보이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크라우치가 작금의 정치 현실을 ‘약화된 민주주의’로 규정하는 이유이다. 어느 나라도 홀로 해결할 수 없어 지구적 차원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주와 난민, 테러와 전쟁 등의 문제도 약화된 민주주의의 결과이다. 이주와 난민 문제는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나라에서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어 생겨난 문제이다. 또 테러와 전쟁은 시민에 의해 견제받고 통제되지 않는 지배권력이 자행하는 정치적 폭력이다. 그럼 이와 같은 정치 현실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누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2장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야 할 때임을 알려줄 것이다. 또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계시민으로서 포착해야 할 민주주의의 이로움과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 민주주의인가 / 로버트 A. 달
절반의 인민주권 / 엘머E. 샤츠슈나이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약화된 민주주의
제3장 세계시민의 존재 기반과 그 위험: 경계영역
20세기에 시민권과 자본주의 계급 시스템은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 토마스 H. 마셜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는 혼합경제를 이루는 두 요소, 즉 시장과 정부가 모두 필요하다. 이 중 하나만 가지고 현대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한 손으로 박수 치는 것과 다름없다. / 폴 새뮤얼슨
3장은 세계시민의 이상과 관련된 경제적 기초를 다룬다. 여기서는 현대 경제의 기본적인 특성, 국가와 경제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고, 오늘 시민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현대 경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특징지어진다. 먼저 시장경제는 생산자(공급자)와 소비자(수요자)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상품이 유통되는 경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 같은 시장경제의 발전은 경제 영역에서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liberty)를 실현하고 나아가 공적 이익을 달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시장경제가 충분히 발전한 상황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종종 간과하기 쉽다. 1998년에 아시아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K.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은 바로 이 점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시장의 효율성과 개인의 자유가 서로 보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사회 일각의 반(反) 시장주의를 경계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 경쟁’을 가정한 것이다. 센도 지적하듯이, 경제력이 집중되지 않은 채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고 모든 공급자와 수요자가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이상적인(ideal) 상황에서, 자유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한다. 그런데 현대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인 자본주의(capitalism)가 이상적인 ‘완전 경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무엇일까? 자본주의는 영리를 추구하는 자본(또는 자본가)이 주도적으로 조직하는 생산방식을 의미한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자본재가 필요하다. 한 사회에는 이를 소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임금노동자도 많다. 이들은 기업에 고용되어 노동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자본주의는 이 같은 임노동관계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생산방식이다.
이때 기업·자본가와 임금노동자가 과연 노동시장에서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을까?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는 법적·형식적으로 동등하다. 그러나 사실상 기업이 고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실질적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그래서 노동시장에서는 완전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기업의 투자가 확대되어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비대칭성이 어느 정도 완화된다.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때에는 비대칭성이 더욱 커진다. 또 자본제적 생산방식에서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서로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이 발생한다. 특히 20세기에는 소수의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과점 체제가 형성된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대기업과 소비자 등의 관계도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다. 불완전 경쟁에서 자유시장은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 실현을 제약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세기부터 정부의 경제적 역할이 크게 증대된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새뮤얼슨과 노드하우스의 「정부와 경제」에서는 정부의 경제적 활동들을 소개한다. 정부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다른 원칙에 따라 작동하면서 시장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20세기 중반부터 정부는 누진세, 사회복지 및 사회보장 제도 등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일련의 케인스주의적 정책들, 즉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실업률이 낮아지도록 유도했다. 그 외에도 환경규제, 공공재 제공 등 이른바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정부의 경제적 역할에서 일대 역전이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케인스주의를 폐기하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다. 경제정책의 주요 목적을 경제성장과 고용 안정에서 물가와 금융의 안정으로 전환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일련의 정책들도 대폭 축소했다. 이와 함께 1980년부터 세계경제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면서 거시경제적 변동성이 크게 낮아지는 이른바 ‘대완화’(Great Moderation)시대가 시작된다. 아울러 이 시기에 기업, 상품, 금융 등이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화가 가속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뒤메닐과 레비의 「신자유주의 혁명의 기원」은 19세기 말부터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체제의 전환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역사적 패턴을 따라, 1970년대 세계적인 경제불황 후에 ‘금융’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을 정치적 불평등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시민권 실현의 기반으로서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은 결코 분리된 문제도, 일국적 차원의 문제도 아님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의 권리는 민족국가가 자본의 이동을 어느 정도 통제한 시기에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과 함께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노동의 국제적 이동은 크게 제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족국가의 정책적 자율성은 약화된다. 그 결과 노동의 권리와 사회적 권리가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 노동의 권리는 오히려 19세기 수준으로 퇴보하는 듯 보인다. 재산소유자의 권리는 글로벌 차원에서도 인정될 정도로 확장되는 만큼, 일반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는 민족국가 내부에서도 축소되고 있다. 이 같은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세계시민의 이상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설령 세계시민의 이상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과거 시민혁명 초기의 ‘소유자 시민’으로 회귀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이 같은 역사적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과제다
자유로서의 발전 / 아마르티아 K. 센
정부와 경제
보론 글로벌 시대,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한계 / 새뮤얼 보울스, 리처드 에드워즈, 프랭크 루스벨트
신자유주의 혁명의 기원 /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기 / 조세프 E. 스티글리츠
제4장 글로벌 시대의 주요 의제와 세계시민적 가치
세계화의 바람이 심상찮다. 기술 발달과 정보네트워크의 확대 속도나 규모 면에서 볼 때, 세계화의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세계화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상호연결성과 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자유무역, 이주와 난민, 기후변화와 환경, 갈등과 분쟁, 실시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등 우리의 개인적·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현상이 단일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발생한다. 이는 세계 거의 모든 장소가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이 전 지구적으로 구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민성(citizenship)의 세계적 차원’은 시민성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에너지 위기, 대량학살을 동반한 지역분쟁과 테러, 난민, 경제적 불평등 확산과 민주주의 위기,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확산, 국제범죄 등 국민국가의 정치단위를 뛰어넘는 국제적인 문제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가 국민국가를 단위로 ‘시민권’의 개념을 발전시켰다면, 현대사회는 그 개념을 더 확장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와 미래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세계시민’(global citizen)의 이상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4장은 세계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제기되거나 인식되고 있는 주요 과제들을 중심으로 그 양상과 원인들, 그리고 해결을 위한 노력들을 살펴본다. 「총론: 더나은 세상, 시민의 삶」은 시민적 덕성을 다룬 글로서 더 나은 세상을 가로막는 생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냉소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공정한 경제, 포괄적인 평화, 생태적 지속가능성, 고도의 민주주의, 사회정의’ 다섯 가지 분야에서 각각의 과제가 안고 있는 도전과 해결해야 할 목표를 제시한다. 각론에서는 다시 글로벌과 로컬(경제), 동일성과 타자(정치), 자연과 인간(기후변화), 과거와 미래(기술) 영역으로 나누어 주요 의제를 다룬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났다. 경제적 불평등은 남과 북 사이에서 확대되었고 선진국 내에서도 확대되었다. 「오늘의 세계적 불평등」은 불평등 현상과 추이, 그리고 원인과 해법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 여러 학자들의 글을 묶은 것이다.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져온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가 국민국가 내의 복지 축소와 사회양극화 현상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는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금융자산의 조세 회피 양상과 세수 손실, 복지 축소로 이어지는 구조를 「글로벌 조세 도피」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는 정치 영역에서도 인종·종족·종교 간의 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과 대립양상을 낳고 있다. 메리 캘도어는 「‘새로운 전쟁’과 정체성의 정치」에서 세계화의 대립물로서 ‘정체성의 정치’가 작동하는 구조를 해명한다. 동유럽의 내전에서 발생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종교근본주의를 앞세운 특수주의 강조는 동유럽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의 확대 등으로 포퓰리즘이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시민권의 관점에서 「이주자의 문화적·정치적 권리」를 다룬 세일라 벤하비브는 독일의 스카프 사건을 통해 누가 과연 ‘독일 시민’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누릴 대상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고정된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다시 규정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과연 어떤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는지 또는 부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을 때다. 한때 인간은 이 지구의 주인이었다. 그래서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의 편리에 따라 개조하는 일을 이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산업발달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다.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지구온난화는 그 피해 규모나 심각성에서 인류에게 심각한 경고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해법을 둘러싸고 이익집단의 압력과 각국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국제적 협력이 위협받고 있다. 스펜서 위어트는 말한다. “과학자들은 최선의 답을 내놓았다. 이제 문제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국이 상징하듯이 인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변화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편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자. 소형 로봇과 3D 프린팅, 빅데이터,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등 인공지능의 시대가 일상화되는 게 머지않은 미래임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할까. 로버트 고든은 섣부른 낙관과 비관을 경계한다. 우리는 아직 변화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래를 설계할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